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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고, 어렸을 때 덴마크로 입양되었다.
이 책은 2014년에 덴마크어로 출간되었고, 2022년 7월에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책의 내용은 저자가 서울에 머물렀던 2007~2010년의 시간이 배경이라서, 현황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책 마지막에 김해순 시인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그 중 일부를 옮겨와 본다.
"한국인들이여, 우리가 신봉하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 혈연주의, 순결주의, 가부장제가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을 비참의 고통에 몰아넣었는지 바라보라. 이산된 자아와 역사 없는 이방인이 된 그들의 비명을 똑똑히 들어보라."
이만큼 이 책을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싶다.
이 책은 거의 모든 문장이 "여자는"으로 시작해서 "화가 난다"로 끝나는 특징이 있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솔직히 읽기가 힘들었다.
책을 어느 정도 읽고난 후에야 "화가 난다"라는 말이 여러 종류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임을 깨닫고
반복되는 말이지만 더 주의깊게 읽기 시작했다.
나와 동갑인 여성이 겪어야했던 고통과 번민을 접하니 가슴이 아팠다.
여자는 입양기관이 고아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허가해준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입양기관이 미혼모 복지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허가해준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입양기관이 운영하는 미혼모 복지시설에 거주하는 여자들이 그렇지 않은 시설에 거주하는 여자들보다 아이를 입양시키는 비율이 훨씬 높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p. 28)
여자는 이성애 중심적 사회구조에 휘둘리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것이 삶의 의미와 목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이 그런 사람들 중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자는 이성애 중심적 사회구조에 화가 난다. 만약 이성애 중심적 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국가 간 입양도 자리를 잡지 않았을 것이다. 이성애 중심적 사회에서는 부부가 아이를 낳지 못할 경우 자녀를 입양하게 된다. 이성애 중심적 사회에서 미혼모가 자녀를 입양 보내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p. 69)
여자는 그린란드에서 아이를 입양하기를 원하는 여자와 연인 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왜 하필이면 그린란드일까. 물론 그린란드에도 불우한 가정에서 고통받는 어린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그러한 가정의 아이들을 덴마크로 입양한다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60~70년대에 미국의 백인 가정에서 원주민 아이들을 대규모로 입양했던 상황을 연상시킨다. 당시 미국 원주민들은 그것이 문화적 말살 정책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1978년 새로운 법이 제정된 후, 백인 가정에서 원주민 아이를 입양하는 것은 이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 물론 아스트리가 그린란드에서 아이를 입양하는 것을 문화적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린란드는 과거 덴마크의 식민지였기에, 여자는 그린란드 아이를 덴마크로 입양하는 것에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p. 92)
덴마크의 백인 남성과 결혼한 태국 여성들이 남편의 정서적 욕구를 채워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계 입양인들이 양부모들의 정서적 욕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레네 명이 국제결혼한 태국 여성들과 한국계 입양인들은 정서적 노동의 대가로 경제적 안정과 물질적 풍요를 제공받는 것을 일종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여자와 레네 명은 덴마크의 국가 간 입양과 태국 여성과의 국제결혼 사례를 중심으로 둘 사이의 구조적인 유사성에 관해 함께 글을 쓰기로 약속했다. (p. 121)
만약, 양모가 진정으로 한국과 연계감을 갖고 싶었다면, 차라리 한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현대자동차를 렌트하는 것은 한국과의 연계감을 가지기 위한 피상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그것은 한국계 입양인들이 게더링 행사에 한복을 입고 나가는 것과고 같다. 물론 여자는 어떤 입양인들은 한복을 입음으로써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굳건히 다지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자의 눈에는 그 또한 피상적으로 보일 뿐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결혼식이나 환갑잔치 등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한복을 입는다. 하지만 한국계 입양인들이 한복을 입고 모임에 나간다는 것은 진정한 한국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현대 서구인의 눈으로 보는 한국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p. 131)
여자는 입양이 전반적으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수많은 증거와 예로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안더스 크리스텐센과 기테 코르데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국가 간 입양인들에게서 매우 큰 위험 변수를 찾아볼 수 있다는 조사 결과를 접한 적이 있다. 스웨덴에서 실시한 광범위한 조사에 의하면 입양인들은 비입양인들에 비해 자살 확률이 무려 서너 배나 더 높다. 한국학자 토비아스 휘비네테의 홈페이지에는 국가 간 입양인들의 자살률은 국내입양인이나 재외국민2세에 비해서도 훨씬 더 높다고 명시되어 있다. (p. 152)
여자는 타인에게 거부당할까봐 두려워하고 쉽게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여자뿐만이 아니라고 말하는 미켈에게 화가 난다. 미켈은 그러한 느낌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두려움이라 말했다. 우리는 모두 타인에게 거부당할까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여자의 두려움은 일반적인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자는 어렸을 때 방과 후 친구들에게 함께 놀자고 먼저 말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전화기 앞에서 몇 시간이나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다고 미켈에게 설명해주었다. 수화기를 집어든 후에도 마지막 번호를 누르기까지 여자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미켈이 이해할 수 있을까. (p. 179)
여자는 성교육이 행해질 때 소년들은 성적 욕구를 방출하도록 권장받지만, 소녀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라 말하는 로랑의 말에 화가 난다.
여자는 소녀가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성이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성을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의 가부장적인 성문화에 화가 난다.
여자는 가부장적인 성문화를 전파하는 한국의 미디어에 화가 난다.
여자는 폭력적인 성문화를 전파하는 한국의 미디어에 화가 난다. (p. 220)
여자는 국가 간 입양에 관한 대부분의 TV 프로그램이 친부모를 찾는 입양인들을 소재로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국가 간 입양에 관한 대부분의 영화가 친부모를 찾는 입양인들을 소재로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바로 그 때문에 국가 간 입양의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가 신선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 예로 국가 간 입양에 관한 경제적 관점, 또는 국가 간 입양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역사회나 국제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다룬 영화를 들 수 있다.
여자는 국가 간 입양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국제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에 화가 난다.
여자는 국가 간 입양이 입양을 보내는 국가와 받는 국가 간의 불평등한 권력 구조에 기반을 두고 발생한다는 점에 화가 난다.
여자는 국가 간 입양이 친부모와 양부모 간의 서로 다른 권력 구조에 기반을 두고 발생한다는 점에 화가 난다.
여자는 국가 간 입양이 국제적 불평등에 기반을 두고 발생한다는 점에 화가 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가 간 입양은 국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편이 아니라, 국제적 불평등 때문에 발생한다.
여자는 국제사회에 국가 간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p. 222-223)
여자는 한국이 70년대와 80년대에 국가 간 입양으로 벌어들인 돈이 2천~4천만 달러에 이른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 화가 난다. 덴마크국제학술협회의 안더스 리엘 물러 박사는 한국의 경제 기적을 이루었던 주체는 한국의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입양인들이라고 말했다.
여자는 자신이 한국의 경제 기적을 이룬 주체로 간주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p. 219)
여자는 한국을 모국이라 불러야 할지 확신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모국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모국에 관한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우리는 왜 사회학자 플레밍 뢰글리즈가 말했듯 물리적 터전에 연연하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일까?
여자는 혈연에 관한 일반적 사고에 화가 난다.
여자는 한국의 여름학교 입학식에 화가 난다. 여름학교는 여러 해 전 코리아클럽에서 개최한 행사로서, 당시 참석했던 한국의 유명인사는 개회사에서 한국계 입양인들이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이유는 바로 혈연과 뿌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곳에서는 한국계 입양인들이 한국 사회의 귀중한 자원으로 간주되었다.
여자는 자신이 한국 사회의 귀중한 자원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항상 한국 사회의 귀중한 자원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가 덴마크에 입양될 당시, 여자는 단지 사회의 짐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이제 와서 여자가 사회의 귀중한 자원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여자가 서구에서 받았던 교육과 서구적 배경 때문이다. 여자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로랑은 바로 그 때문에 한국 정부가 한국계 입양인들에게 이중국적을 허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거주하는 다른 외국인 이민자 그룹은 한국계 입양인들과 비교해 성장 배경이나 교육 수준이 낮기 때문에 이중국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한국에 수 세대 동안 거주하는 중국 이민자들은 이중국적을 가질 수 없다. (p.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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