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 살면 미드/캐드 보면서 영어 공부 열심히 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일종의 향수병인지, 한국에서 안 봤던 한국 드라마를 찾아본다. 1회에서 끌리지 않으면 2회를 안 보는 편인데, <밀회>는 1회에서부터 끌렸다. 오혜원(김희애)이 너무 자기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면서까지 성공하려고 해서. 왜 그런지 궁금했다.
종편방송이 이목 끌려고 작정하고 자극적으로 만든 치정멜로인줄 알고 안 봤던 드라마인데, 그런 류가 아니었다. 오히려, 오혜원의 성장드라마에 가까웠다. 오혜원과 이선재(유아인)의 관계는 스무 살 나이 차를 넘어선 불륜의 관계라기 보다는, 자신을 진실로 사랑해 본 적 없는 속물적 인간이 순수하고 진실된 영혼의 사랑을 받으면서 돈을 넘어선 가치를 추구할줄 아는 사람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관계로 보였다.
극본과 연출도 훌륭했다. 솔직하면서도 함축적인 대사들을 들으며 생각할 시간을 가졌고, 디테일한 연출에 모두 의도가 담겨 있어 장면 하나하나 곱씹어 볼 수 있는 게 좋았다. 드라마이지만 소설 같았다.
연기는 당연히 좋았다. 연기가 당연히 좋을 거라는 신뢰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보기 시작한 드라마이다. 유아인과 김희애이니까. 유아인의 연기는 가끔 좀 애매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김희애의 연기는 마음에 와닿았다. 이선재가 자기 방에 오혜원을 들이기 전에 걸레로 열심히 바닥을 닦는 장면에서 오혜원이 마음의 울림을 느끼는 모습을 포착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돈이면 무엇이든 된다고 믿는 사람들의 가치관... 그것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떳떳하게 자신의 죄값을 치르고자 했던 오혜원. 그러한 그녀를 단지 멋있어서가 아니라 예쁘기도 해서 함께 하고자 했던 이선재. 가치 있는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걸 알고 믿었던 그들.
한국 드라마를 본다면, 이 드라마를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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