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좋아서 보는 영화 / / 2020. 12. 30. 10:17

[여왕벌] 이태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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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책을 읽던 중에 이 영화를 봤다. 45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 중간쯤에 이태원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는데 '이태원'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알고 깜짝 놀랐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강간으로 수태한 비구니들이 현재의 이태원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공간을 제공받았고, 그래서 다른 이, 자궁 태, 집 원 자를 써서 이태원이라 불리게 되었단다. 현재 지하철역 이름을 표기할 때는 또 다른 유래인 '배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뜻의 한자를 쓴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전자의 유래는 금시초문인데다가 끔찍하기까지 하다. 

책에서는 예로부터 타자화의 지역인 이태원이 그 후 어떤 역사를 거쳤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주로 미군을 상대로 하는 성매매가 만연하다 보니 "벌집과도 같은 빽빽한 건물에 한국인 여성들을 몰아넣고,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외국인 남성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이 영화 '여왕벌'에 잘 살아 있다고 해서 찾아 보았다. 

지금도 아름답고 요염한 이혜영이 주연한 이 영화 <여왕벌>은 내가 여섯 살 때인 1985년에 개봉했다. 당시의 서울, 그것도 이태원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서 보니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유쾌한 기분도 잠시... "Try her." 이 한마디로 설명이 끝나는 미군의 한국 여성 능욕 장면을 보고 있자니 한국이라는 나라의 처지에 새삼 화가 났다. 영화에서도 살풀이춤과 전통 장례의식을 통해 한의 감정을 이미지화한다. 

요즘의 이태원은 2012년 초에 미국 헌병이 단속을 시작하면서 미군의 말썽이 잠잠해진 한편 게이바, 고급 식당, 이슬람 사원 등으로 인한 다채로운 이미지 때문에 예전보다 더 많은 한국인들이 찾고 있다. 하기사... 나만 해도 이태원 살인사건 때문에 무서워만 하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현재 20대 초중반인 90년대생은 그런 이미지는 잘 모르고 가로수길처럼 트렌디한 장소로만 알고 있겠지. 그만큼 그들과 내 세대 사이에 간격이 생길테고.

이태원은 기념관 안만드나... 내 다음의 세대들이 이 곳을 제대로 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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