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년 이렇게 4년. 캐나다에서 지내느라 한국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로밖에 보지 못했던 시기. 이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들 중에 관객수가 그리 많지 않아도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가 있단 걸 추천 알고리즘에 따라 우연히 알게 됐다. 내가 이름이 알려진 영화 위주로 쫙 봤떠니이제는 비교적 덜 알려진 영화를 추천하는 것 같다. 그러나 원래 이런 게 또 괜찮은 작품들이 많다는 거! 넷플릭스의 선택을 75% 정도는 신뢰하니까.
이 영화 '카센타'는 19년 11월에 개봉했다. 일단 제목이 '카센터'가 아니라 '카센타'라서 아저씨같은 푸근한 느낌이 들어 친근하다. 카센타에서 일하시기에는 미모가 차 기름때를 뚫고 나올 정도로 잘생긴 박용우님. 마찬가지로 부업으로 만들고 있는 봉제 인형보다 이목구비가 화려한 조은지님. 이 두 배우가 주인공이다.
상황이 너무 안 좋다. 카센타는 망하기 일보직전이다. 재구(박용우)는 서울 카센터 기술자로 일하다가 서울로 유학 온 아내 순영(조은지)을 만나 처가가 있는 경남 사천으로 와서 장인이 빌려준 땅에서 대흥카센타를 운영한다. 지역 내의 얽히고설킨 혈연 관계를 이용하고 청년회 회장이라는 권력을 사용하며 본인 특유의 폭력성으로 사람들에게 겁을 줘서 지역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문사장의 방해로 재구의 카센타 운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거나, 단체에 가입하고 그 분위기에 스며들어 힘을 이용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을 눈감고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의 재구는 동네 구멍가게 손녀 은미가 유일한 친구이다. 이런 상황에서 카센타 주변에 리조트 공사가 시작되면서 카센타가 위치한 도로변에는 하루종일 먼지가 날리고 건축사 대표에게 항의를 해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공사 트럭이 흘리고 간 금속 조각에 타이어 펑크가 나서 빵꾸 손님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재구는 생존의 기회를 엿보게 된다. 재구는 원래 순수하고 바른 사람이다. 그런 그가 궁지로 내몰리자 정의롭지 못한 일에 눈을 뜬다. 금속 조각을 일부러 도로에 더 뿌리고 펑크가 날 확률을 높이기 위해 금속 조각을 뿌리는 간격을 조절하기도 한다. 이런 그의 위험천만한 불법 행위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던 순영은 돈이 벌리기 시작하자 오히려 재구를 재촉해 도로에 못을 심자고 한다.
타이어가 펑크나지만 인명 피해는 나지 않고, 인명 피해가 날 뻔한 사고에서는 우연히 유괴범을 잡기까지 하면서 재구-순영 부부는 서울 외곽에 본인들 소유의 카센타를 짓는 꿈까지 꾼다. 그러나 이들 부부의 수상한 행보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던 문사장은 이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게 되고 순영은 자신을 잊지 못한 문사장에게 몸을 주어 그의 입을 단속한다.
재구는 이를 모른채 새 차를 구입하고 맞춤 정장을 빼입고 동네를 나다니다가, 본인이 심어놓은 못에 타이어가 펑크난 차가 은미를 치었다는 걸 알고 찾아간 병원에서 문사장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순영이 돈을 위해 무엇까지 해왔는지를 알게 된다. 집문서와 돈을 지키기 위한 순영과 재구의 몸싸움 일어난 다음 날 재구가 리조트 공사장 트럭을 탈취하여 카센타를 향해 돌진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후반부만 보면 이 영화가 돈에 대한 욕망 때문에 양심을 저버린 이들에게 경고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궁지로 내몰린 재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가 가장 두드러지게 보였다. 재구는 문사장 패거리들로 인해 돈을 벌기가 거의 불가능해서 전기세마저 내지 못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처가로부터 온갖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그는 원래 누구보다도 불법에 이의 제기를 잘하던 사람이었고 동네 사람들을 돕는 친절한 마음도 갖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위험천만한 방법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돈 맛을 알아버린다.
사람을 궁지로 내모는 것과 관련해서 이 영화에서 보면서 가장 소름돋았던 장면이 있다. 재구가 리조트 건축사 대표 딸의 납치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하루종일 조사를 받다가 나오는 씬이다. 한 경찰이 미안해하면서 그를 집까지 태워준다. 재구의 집에 가는 길에 경찰은 자신이 피튀기는 경쟁을 피해 서울을 탈출해서 내려왔는데 여기에서는 노골적인 텃세 때문에 힘들다고 말을 하며 재구에게는 서울 사람이 여기에서 텃세 때문에 힘들어서 어떻게 밥벌이를 하고 있냐고 묻는다. 재구는 열심히 버티고 있다고 짧게 대답한다. 여기까지는 외지인끼리 공감하는, 인간미 넘치는 장면이라고 보기 쉽다.
뒤이어 정말 소름돋는 대사가 이어진다. 운전 중이던 경찰은 안경을 벗고 블랙박스를 끄더니 재구에게 그렇지 않아도 바쁜 자기네 경찰들을 이런저런 일을 만들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게 만들지 말라고 무서운 얼굴과 말투로 경고한다. 열심히 버티면서 찌그러져 있으라는 경찰의 한 마디는 고립된 재구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같은 외지인 신세이지만 나는 경찰, 너는 일개 왕따 주민이라는 거다.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소름돋았다. 돈에 대한 욕망은 유니버설하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루어질 때 식상한 느낌마저 들지만, 이런 식으로 인간을 궁지에 내모는 폭력은 그 폭력성 때문에 볼 때마다 공포스럽다.
이 영화를 보면서 <지금 우리 학교는>이 떠오른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종류의 인간이든간에 궁지(죽음)에 내몰지 않는 것'이 영어 교사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재구는 죽지 않으려고 살아남은 자였지만, 그의 상황에서 자살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그는 극도로 궁지에 내몰려 있었다. 이렇게 일상에서 보기 쉽지만 사실 알고보면 공포스러울 정도록 폭력적인 폭력이 누군가를 배제하고 궁지로 내모는 폭력이다. 한국은 그런 일이 참 쉽게 일어나는 곳 중 하나인 것 같아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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