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에 보고 쓴 리뷰 ---
영화 <컬러풀 웨딩즈>는 번역이 작품의 흥을 엄청 살린 케이스이다. 이 번역자에게 러닝 개런티를 줘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윤혜진이라는 번역자인데, 센스가 뛰어나서 어떤 분인지 궁금하다. 이 영화 프랑스 원어의 실제 의미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나저나, 번역자의 저런 센스는 어떻게 길러지는 것인지 궁금하다. 한 때 번역 강의를 들었던 자로서, 엄청난 내공이 느껴지는, 부러운 능력이다.
이 영화는 웃기기만 한 게 아니고, 인종차별의 다각적인 면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프랑스인 할머니는 흑인 손자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같이 다니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대사관 보모로 볼까봐 걱정한다. 다른 피부색에 대해 공포나 혐오가 있지 않더라도,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쓰다보면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려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유태인, 아랍인, 중국인 사위가 예비 아프리카 사위를 떼어내기 위해 셋이서 작당을 한다는 점에서는 인종차별을 받는 이들 또한 인종차별의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이는 한 사위가 "우리 모두는 약간씩 인종차별주의자이죠."라고 말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도 보이는데, 이는 남자들이 인종차별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기 보다는,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약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 같다.
유태인 사위와 잘 지내보고 싶은 프랑스인 장모가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온 리암 니슨이 좋다고 했다가 (리암 니슨이 유태인을 연기한 것 뿐이지, 사실은 유태인이 아니라서)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장면이라던지, 프랑스인 장모가 유태인, 아랍인, 중국인 사위들의 입맛에 맞도록 크리스마스 칠면조를 세 마리나 준비해서 코셔, 할랄, 중국식으로 요리했지만 막상 사위들이 이런 음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진정한 이해'를 위해서는 상대의 문화에 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기반해서 말하고 행동할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서로를 알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절대 사이좋게 지낼 수 없을 것 같았던 프랑스-아프리카 사돈 지간의 아버지 둘 사이에 술을 매개로 케미가 생성되는 장면이다. 공통 분모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둘 다 결혼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마음이 통하여 결국 둘 다 좋아하는 술을 진탕 먹고 인사불성이 된다는 설정 자체가 재치있고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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