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재미로 읽는 책 / / 2022. 4. 25. 11:00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난 찬영이처럼 항암을 거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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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종양내과 전문의의자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다.

이 책은 그가 여러 암환자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성찰한 바가 담긴 에세이이다. 

저자 자신이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의 성찰에 더 깊이가 느껴진다. 

사고는 충분히 정교하고 깊되 문장은 담백해서 마음에 든다. 

 

 

책의 내용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예정된 죽음을 눈앞에 두고 보이는 여러 태도들에 대해 다뤘다.

- 의사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 신뢰/감사/미안함을 표현하는 사람

- 가족이 거의 찾지 않는 사람,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사람

- 암환자는 장기 기증은 불가이지만 뇌 기증이 가능해서 뇌 기증을 신청한 사람

- 항암치료를 거부했다가 감당하기 어려운 통증이 찾아오면 뒤늦게 항암치료를 원하는 사람

- 뭘 하고 싶은지 모르지만 막연히 오래 살기를 원하는 사람

- 가족들에게 암에 걸렸단 사실 자체를 수년간 숨기는 사람

- 암이 재발해도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잘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자살한 사람

- 어린 자식들을 보기 전까지 숨을 거두지 않은 사람

 

 

2부에서는 암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다뤘다. 

- 택시 운전을 하며 삶에 감사를 느끼며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

- 가족의 사랑과 긍정적인 태도로 기적적으로 치료 효과를 보인 사람

- 어렵게 암 완치 후 학교 교사를 하며 부당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인생을 개척하는 사람

- 소아암으로 아이를 먼저 보내고 슬퍼하는 부모

- 암이라는 병력 때문에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

- 타고난 긍정적인 태도로 기대 수명을 넘어 살고 있는 사람

-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진정한 사랑을 만나 결혼한 사람

 

 

3부에서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뤘다. 

-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는 의사가 있을 수 없는 이유

- 의사는 환자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

- 사람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 의사들

- 완화 의료를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

- 마지막까지 항암 치료를 하게 되는 이유

- 환자와 거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

- 의료 윤리 교육

- 돌보는 이가 이기적이야 하는 이유

 

 

4부에서는 생사의 경계에서 목도한 모습을 그렸다. 

- 인맥이 중요한 각자도생의 나라

- 연명의료결정법의 실태

- 울 수 있는 권리를 앗아간 진료 시스템

-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상태로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 나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며

 

 

가장 기억에 남기고 싶은 부분은 3부에 있고, 아래에 발췌해 뒀다. 

 

의사가 더 이상 함암치료가 어렵다고 해도 많은 환자들은 최선의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그 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명목 아래 믿을 수 없는 보완 대체의학에 헛돈을 쓰거나, 함암치료를 포기하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연명의료를 받다가 그대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왔기에 안타까울 때가 많다. 삶을 마무리할 최소한의 여유도 없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애를 쓰다 가는 것이다.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게 지금의 우리 모습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 한국은 살기도 힘들지만 죽기도 힘든 나라다. 

 

물론 의사인 내 마음속에도 항암치료 중단에 대한 저항감이 있다. 아직은 쓸 수 있는 약이 남았는데, 아직 환자가 이 상황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보호자도 아직은 더 치료를 받고 싶어 하는 눈치인데 내가 너무 쉽게 환자를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빠져들면 나 역시 나쁜 소식을 전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욕먹을 각오를 하면서 나쁜 소식을 전하기보다 차라리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는 대로 항암치료를 하는 쪽이 속 편하기도 하다. 실제로 환자나 보호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의사에게도 힘든 일이다. 감정 소모가 크고 환자로부터 원망 섞인 말도 많이 듣는다. 심지어 이 의사가 실력이 없는 것이니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환자나 보호자가 난동을 부려 곤란한 경우도 왕왕 벌어진다. 이런 경우 환자나 보호자를 설득하는 데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만 한다. 웬만한 의지가 있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그래서 때때로 효과가 없을 게 뻔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무의미한 항암치료를 이어가기도 한다. 

 

또한 마지막까지 항암치료를 이어가는 데는 또 다른 요인이 뒤섞이기도 한다. 항암치료 중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는 것은 시간도 에너지도 많이 드는 일이지만 병원 수익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항암치료도 하고 CT 검사도 하고 여러 의료 행위를 하면 병원에 수익이 발생하지만 나쁜 소식을 전하고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면 병원에는 0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암 환자들이 사망 4주 전까지 항암치료를 받는 것은 여러 요인들이 얽힌 결과다. 

 

나는 의사로서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경우에 환자들에게 가능한 한 일찍 말하려고 한다. 어떻게 두 달 만에 삶을 정리하느냐는 그 환자의 말이 틀린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육십 평생 살아온 시간을 정리하는 데 두 달이라는 시간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짧다. 내가 만일 갑자기 말기 암 환자가 된다면 40년 조금 넘게 살아온 내 삶을 정리하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생각해본적이 있다. 적어도 6개월 이상은 필요할 것 같고, 누구든지간에 두 달 안에 정리하라고 한다면 나 역시 화가 날 것 같다. 

 

 

드라마 <서른, 아홉>에서 찬영이가 췌장암 진단을 받고 1%가 채 되지 않는 생존 가능성을 위해 항암을 받겠냐는 말을 들었을 때 바로 거부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실오라기 같은 생존 가능성에 목을 메고 항암 치료에 온몸을 던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찬영의 말처럼, 1%가 되지 않는 생존 가능성을 위해 항암을 받겠다는 건, 연명 치료를 받으며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삶을 산다는 걸 뜻했다. 마찬가지로 그걸 알면서도 의사인 미조는 항암을 받을 것을 권한다. 이 마음 또한 너무나 이해가 된다. 나 또한 내 가족이나 친구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항암을 받으라고 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이 살기를 바라니까.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누군가 정신을 차리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서 항암을 거부하고 인간답게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생을 마감한다면 참으로 멋진 일이겠지. 내가 그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살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항암을 택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기도 하다.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 상황이 직접 닥치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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