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20대 대통령 선거...
사전 투표할 이유가 없는데도 괜히 마음 급해서 사전 투표 첫 날 오전에 투표를 했지...
개표 방송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역사적으로 꽤 정확했던 출구조사 결과 접전이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까 심장이 쫄깃해지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면 사절이기 때문에.
출구조사 결과만 보고 TV를 껐고
일부러 평소보다 훨씬 일찍 잤다.
그리고...
이전에 꿔 본 적 없는 악몽을 꿨다.
10년 다니다 퇴사한 옛 직장이 배경이고
내게 A, B 두 개의 프로젝트를 모두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하는 업무가 주어졌다.
나는 A와 B 중 무엇을 먼저 끝내야 할지 답 없는 고민을 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꼈다.
개표 방송에서 1번과 2번 사이에 벌어졌을 접전 때문에 이런 악몽을 꿨나 의아해하며
개표가 거의 마무리됐을 새벽 5시 무렵 깨어나 핸드폰을 켰다.
너무나 근소한 차이로 당선된, 내가 투표하지 않은 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잠이 확 깼다.
그 후로 약 한 시간 동안 체한 기분으로 몸을 뒤척이다 겨우 다시 잠들었다.
3월 첫 주에는 책에 푹 빠져 있었는데
대선을 기점으로 다시 영화 삼매경으로 돌아갔다.
현실 도피에는 영화만한 게 없으니까...
주구장창 도피할 수는 없지만 단 하루라도 현실을 잊을 도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본 영화 네 편...
<불가살> 보고 이진욱에 빠졌고
<스물다섯 스물하나> 보고 나희도(김태리)에 빠졌고
<소년 심판> 보고 심은석(김혜수)에 빠졌던 터라
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찾아 봤다.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가 웃을 때 내 마음이 환해진다.
인내심을 가지고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먹는 모습,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모습,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모습...
장면 하나하나가 힐링이다.
병든 남편의 요양을 위해 그의 고향에 내려왔다가
그가 죽고나서도 한자리에서 딸을 키워내고
딸이 수능을 마친 며칠 뒤에
본인의 인생을 찾아 떠난 엄마의 존재가 돋보인다.
<내가 죽던 날>
오랫동안 바람을 펴놓고도
유리하게 이혼하기 위해
거짓말로 아내를 괴롭히는 변호사 남편,
가족 모르게 부정을 저질러 가정을 파탄낸 아버지,
가족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오빠,
여성 증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후
도망치듯 일을 그만두는 남자 경찰,
장애인 딸을 돌보다 도망치듯 자살하는 아버지...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연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소년 심판>에서 인상적이었던 김혜수-이정은 케미를
이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
이진욱이 가장 별볼일 없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영화이다.
오랫동안 해온 글쓰기를 포기하고
여자친구의 집에 얹혀살며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유'라는 남자.
여자친구가 계약직으로 일하던 서점에서 해고된 줄도 모르다가
집에서 내쫓기고 완전히 버림받는다.
실패의 연속으로 무기력함과 패배감에 찌들어 있는 경유는
대리운전 일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옛 연인 '유정'과
그녀의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지만
그녀가 숨기고 있던 의도를 알아채고 곧 그곳을 떠난다.
대리 운전 일을 하던 어느 날 밤,
석연치 않은 손님을 목적지에 데려다 주고 돌아선 경유는
동물원을 탈출해 도시를 배회하던 호랑이와 마주친다.
극강의 공포심을 이겨내고 도망가던 그는
걱정되어 대리운전한 차로 돌아가고
자살 시도를 해서 피를 철철 흘리며 살려달라는 손님을 발견한다.
손님과 손님 뱃 속의 태아까지 살린 그는 자신감을 얻고
여전히 오갈 데 없는 상황이지만
지하철 역사 밖에서 다음 대리 운전 콜을 기다리며
펜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열한번째 엄마>
사기꾼에 도박 중독자이자 폭력적인 아빠 밑에서
씩씩한 아이 '재수'가 자란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빠가 계속 데려오는 여자들은
사실 아빠가 돈으로 사고파는 여자들이다.
열한번째 '엄마'는 밥을 차려주기는 커녕
재수의 김밥과 떡볶이를 묻지도 않고 먹는 것도 모자라
재수의 식권까지 훔쳐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사다먹는다.
"식충이" 엄마가 마약까지 하는 모습을 보자
재수는 이제껏 보아온 엄마 중 제일 나쁜 엄마라고 소리지르며
주사기와 약을 모두 내다버린다.
저혈당 쇼크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나서야
재수는 부랴부랴 약을 구해와 엄마를 구한다.
이 일을 계기로 사이가 가까워진 둘은
함께 놀이공원에도 가고 밥도 먹는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엄마는 집을 떠나지만
재수의 학예발표회에 꼭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가서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곁에 있기를 바라는 아이의 마음을 보고
시궁창 같은 집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죽은 후에 홀로 있을 아이가 걱정된 엄마는
이런저런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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