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 읽고 쿠팡 배달하시는 분들에게 혹독한 잣대를 내세우면 안되겠구나 하는 반성을 했다. 이틀 전에 쿠팡으로 새벽에 배달받은 오이 중 한 개가 끝이 부러져서 왔는데 예전 같으면 배송 관련 컴플레인을 걸었겠지만 먹는 데 크게 지장이 없고 배달하시는 분들이 일하는 여건이 열악하므로 컴플레인 없이 잘라내고 먹기로 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일하는 여건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으므로 더 잘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용 씨가 쿠팡 플렉스 일을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주야간으로 열심히만 하면 정말 월 500만 원을 벌 수 있었다. 밤과 낮의 신체 리듬이 바뀌어 몸과 정신은 힘들었지만, 지금의 고생이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픈 꿈을 이루어 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플렉스 수가 급격히 늘자 쿠팡은 프로모션 제도를 중단했고 배송 단가는 곤두박질쳤다. 3,000원에서 2,000원으로, 2,000원에서 다시 1,000원 대까지 떨어졌다. 일하겠다는 인력이 매일 차고 넘치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배송 단가를 다시 높일 이유가 없다. 이미 잡은 물고기에는 더 이상 먹이를 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프로모션이 사라지자 플렉스들 중 일부는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주야간 배송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들에게 플렉스는 아르바이트가 아닌 '직업'이니까. 프로모션 때와 같은 월수입을 얻으려면 배송 건수를 늘려야 한다. 배송 단가가 반토막이 나면 배송 건수를 2배로 늘려야 이전과 같은 돈을 벌 수 있다. 결국 장시간 노동을 피하지 못하는 구조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p. 36)
뉴스에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혁신 기업들을 소개하며, 직원들의 연봉이 얼마나 인상됐고, 성과급이 얼마인지 연일 보도한다. 극심한 취업난을 뚫고 큰 기업에 취업한 인재들은 말 그대로 '좋은 스펙'을 가진 엘리트들이다. 바로 그들이 일류 기업에 들어가 고민하고 설계하고 만들어 낸 것이, 그 기업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위험을 전가하고 더 많은 부담을 감수하게 만드는 알고리즘과 시스템인 것일까? 기업의 목적이 이윤 추구라고는 하지만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이 인간의 노동 단가를 최소화하는 것만을 포함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p. 39)
기존 회사에서의 고용을 생각해 보면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킬 때 직접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지휘, 감독을 받는 것이 노동자성,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중요한 판단 지표로 작용한다. 하지만 플랫폼에서는 직접 지휘, 감독을 하지 않고 서비스 이용자와 플랫폼 노동자들을 중개할 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별점이나 고객 평가로 노동자의 임금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일감을 제한하는 경우, 정말 플랫폼 업체가 중개만 한다고 볼 수 있을까. (p. 56)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에게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조정 해결 절차가 제대로 적용된 건 단 6.7%에 불과했다. 고객의 집 화장실을 청소하다가 미끄러져서 손목뼈가 나가도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 홀로 떠안아야 한다. 가사 노동자는 현행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므로 산재 처리를 받을 수 없는 탓이다. 일하지 못해 생계에 지장이 생겨도 개인사업자 신분이라 대출조차 받기 힘들다. (p. 58)
플랫폼에서는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권력의 정도가 달라진다. 이런 구조 속에서 플랫폼 기업의 책임은 한없이 가벼워지고 비용은 낮아지는 반면, 모든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결국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장시간 근로를 하거나 불안정한 노동동을 감수해야 하며, 이런 구조적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 자유에 대한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플랫폼 노동자의 몫이 되는 플랫폼 세상. 플랫폼 노동자로서의 고민을 함께 나눌 회사도, 상사도, 동료도 그의 곁엔 없다. 플랫폼 노동의 이면에는 너무나 씁쓸하고 외로운 각자도생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p. 58)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정규직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비정규직 일자리와 외주화 비율이 크게 늘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은 노동이 건당으로 거래되는 플랫폼 노동 시대를 열었다. IMF 외환위기 때만 하더라도 노동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정규직은 좋은 일자리, 비정규직은 안 좋은 일자리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플랫폼에서는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형태의 계약을 통해 '너와 내가 동등한 계약자'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통제의 방식이 이윤을 창출하는 임금이 아니라 실적에 따른 '건당'으로 수입을 책정하고, 심지어 고객도 평가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고 유지하는 게 플랫폼 경제인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초단기 노동을 제공하는 임시직 근로자가 늘어고 있다. 일감을 받아 그때그때 일하는 비정규직 형태의 노동자로 공유 택시 운전기사나 플랫폼 배송기사, 그리고 웹 개발자 등이 대표적이다.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산업과 기술을 연결했고, 플랫폼 비즈니스의 영역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p. 78)
"기업에서 다음 달 월급을 10만 원 깎는다고 하면 다들 난리가 날 테지만, 플랫폼에서는 배달 단가를 500원 깎으며 '왜? 라이더들이 많으니까.'라고 하면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하죠. AI라든지 알고리즘이 내놓은 거의 신적인 결정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면 비합리적인 사람처럼 보일 뿐이니까요." 정훈 씨의 말처럼 AI라는 신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따라야하는 생태계가 바로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이다. AI 알고리즘은 플랫폼 기업이 이윤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달 산업의 성장이 라이더들의 이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훈 씨가 다시 배달 주문 화면을 켠다. 배달 콜이 가장 많은 저녁 피크 타임. 1초마다 금콜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배달은 모두가 꺼리는 똥콜 뿐이다. 하지만 라이더들은 특별한 프로모션이 없어도 똥콜을 수락해야 한다. 계속 거부하면 수락률 별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정훈 씨가 픽업 거리가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똥콜을 수락했다. 이렇듯 '알고리즘 상사'는 라이더들을 움직여 전국 어디든 24시간 배달 가능한 배달 천국을 만들고 있다. (p. 121)
"배달 대행업체에서 800만 원, 900만 원 벌 수 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배달의민족에서도 라이더가 돈을 많이 번다고 홍보하는데 되게 나쁜 짓입니다. 못된 짓이예요. 그 정도로 벌려면 상당히 무리하면서 일한다는 거예요. 밥 먹으면서 '지지기(자동 콜 수락)' 한다는 건데 사고 위험이 커요. 헛된 광고, 과장 광고인 거죠." (p. 123)
최소한 받아야 할 작품비에 대한 기준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프리랜서에게 가장 어려운 결정은 시간과 전문성을 금액으로 따져 청구하는 일이다. 가격이 너무 높으면 고객이 끊긴다. 그렇다고 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하면 프리랜서로서 자신의 실력과 가치를 낮추는 것과 같다. 그러니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했지? 내가 이 정도 금액을 받으면 욕먹는 거 아닐까?’ 하면서 남들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 (p. 161)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플랫폼 노동자의 초기 조직 활동은 공정거래법으로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성을 확인받지 못하면 근로 조건 개선 요구를 하거나 선전, 홍보하는 것이 모두 위법 활동이 된다. (p. 165)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더 나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본을 투자할 때 기대 실적을 바탕으로 비용을 철저히 계산한다. 반면 플랫폼 기업의 투자는 그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플랫폼이 만들어 놓은 무한 경쟁의 정글에서 소비자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투자하는 주체는 플랫폼 기업이 아닌 플랫폼 노동자다. 기업이 내세운 ‘자율성’이라는 슬로건은 달콤하지만, 실상은 위험 요소와 경쟁 요소를 모두 개인에게 떠맡기는 격이다. 우버 기사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차량을 ‘최고 수준’으로 관리한다. (p. 196)
플랫폼 기업은 해마다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09년 창업한 우버는 2019년 뉴욕 증시 상장 당시 1200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으며 단숨에 100년 기업 GM과 포드를 뛰어넘었다. 우버 기사들의 시간당 수입이 캘리포니아주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8.5 달러인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p. 204)
플랫폼 기업은 눈부시게 성장했지만 노동자는 더욱더 가난해졌다. 우버가 만들어 낸 알고리즘 기술이 노동자의 삶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변하게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우버의 알고리즘은 우버 기사를 ‘고용된 노동자’가 아닌 우버 앱을 사용하는 이용자 즉,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기업은 주휴 수당, 건강 보험, 실업 수당 등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고, 알고리즘 별점과 리뷰 시스템을 통해 우버 기사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게 됐다. (p. 206)
우버의 뉴욕 증시 상장을 앞둔 2019년 5월, 전 세계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케냐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우버 기사들이 우버 앱 삭제 캠페인을 펼치며 ‘공정한 요금’을 요구했다. 더불어 우버 기사들은 자신들은 ‘개인사업자가 아닌 우버에 고용된 직원’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가운데 수많은 플랫폼 기업이 탄생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의미 있는 법안이 발의됐다. 바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플랫폼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직원’으로 인정해야 하는 AB5 법안이다. 즉 회사의 지휘와 통제로부터 자유롭고, 그 회사의 통상적인 비즈니스 이외 업무를 해야 하며, 스스로 독립적인 고객층이 있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않으면 개인사업자가 아닌 고용된 직원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AB5 법안은 2020년 1월 시행되기 직전 난관에 부딪혔다. 우버와 포스트 메이츠 등 플랫폼 기업들이 해당 법안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하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법안 통과를 막는 로비를 펼친 것이다. 그 결과 지난 2020년 11월 운전, 배달 기사를 개인사업자로 간주하는 주민발의 22호가 캘리포니아주 의회를 통과하면서 우버와 리프트는 AB5 법안을 피해갈 수 있었다. (p.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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