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여름, 올레TV에서 다운로드 받아 본 영화 <러스트 앤 본>이다. 시작부터 끌렸던 영화. 돈 한 푼 없는 아버지와 아들이 아이의 고모네에 가는 모습dm로 시작된다. 기차에서는 아들이 배고파 죽겠다고 하니까 남이 먹다 남기고 간 음식을 주워와서 먹이고, 장난감 가게에서 좀도둑질을 해서 아이 장난감을 마련한다. 왜 저렇게 가난하지? 어디에 가는 걸까? 하는 의문을 품으며 집중할 수 있었다.
주인공은 누나 집에 정착해서 애는 학교에 보내고 자기는 클럽 기도 일을 시작한다. 거기에서 남자한테 맞아 쌍코피가 터진 여인을 도와주고 집에까지 데려다 준다. 근데 그 여자가... 어? 혹시 마리옹 꼬띠아르? 어? 근데 왜 저렇게 추리하게 나와? 말투는 왜 이렇게 거칠고? 그 때부터 관심이 열 배는 증폭되어서 두 다리를 가슴에 붙여 끌어안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마리옹 꼬띠아르. 영화 '인셉션'과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보고 반해버린 배우. 단지 '예쁘다'라는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 매력이 넘치는 데다가 연기도 참 잘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력은 더 빛을 발한다. 어느 순간은 영화가 아니라 다큐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는 여자와 반대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다르다. 단순하다. 자기가 싫으면 싫은 거다. 격투를 좋아한다. 아들을 끔찍히 여기지만 살갑게 대할줄은 모른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서 언행에 거리낌이 없다. 그렇지만 사악하거나 교활한 사람은 아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자신의 몸을 이 여자 저 여자와의 잠자리에 소모할뿐 진정한 관계를 맺지는 못한다.
범고래 조련사인 여자는 외로웠다. 고래가 좋아 시작한 일이지만 화려한 쇼가 끝난 뒤에는 허탈감이 있었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남자친구에 대한 마음은 식은 지 오래이다. 그래서 헐벗다시피한 차림으로 클럽을 찾았고 거기에서 남자와 싸움이 붙었고 그 클럽 기도였던 남자 주인공을 만난다. 그는 연락처를 남겼고, 쇼 도중에 일어난 사고로 두 다리를 범고래에게 잃은 여자는 그 번호로 연락한다. 그 마음은 어떤 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동료, 친구들과의 만남도 마다하고 우울하게 지내던 그녀가 왜 그에게 연락했을까? 자기가 두 다리를 잃었으니 클럽 기도였던 그와 비슷한 급이 되어 연락할만 하다고 생각했을까? 두 다리가 멀쩡했더라도 그에게 연락을 했을까? 잘 모르겠다. 그게 중요한 것 같지도 않고. 어쨌든 둘은 그렇게 만났고, 거리낌이 없는 그는 그녀를 바다로 데려가서 다리 좀 보이면 어떠냐며 수영하고 싶으면 하라고 한다.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가두던 틀을 깨고 세상에 나온다. 결정적으로는 그의 '출장' 서비스로 다시 태어나게 되지만.
둘의 육체적 관계는 그녀의 삶의 의지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목석같았던 그는 그녀의 감정 표현과 지지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든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면. 그가 처음으로 말한다. 사랑한다고. 근데 이 말이... 이제까지 다른 영화에서 들었던 '사랑해.'보다 훨씬 묵직하다. 그 말을 하기 직전까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감정선은 대사가 아니라 몸짓과 표정으로만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잔잔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래서 이 말이 가슴 깊이 파고 든다.
극적인 드라마를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맞지 않으리라. 그런데 당시의 내겐 가장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 중 하나였다. 참고로, 영화 제목 <Rust and Bone>은 '얼굴을 가격당한 후 입 안에 고이는 피의 맛'이라는 뜻의 전문 용어라고 한다. 남자가 격투를 하고 여자가 매니저를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인생의 맛인 것 같기도 하고.
이 영화의 중심이 여자와 남자의 관계, 그리그 그들의 성장에 있기는 하지만, 그게 정리 해고, 직원 불법 감시 등의 묵직한 현실 속에서 그려진다는 점이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남자가 애를 데리고 누나 집에 가지만 그 집도 정리 해고 이후에 입에 풀칠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누나가 사장이 불법적으로 설치한 카메라에 유통 기한 지난 식료품을 가져가는 모습이 찍혀서 해고당한다. 이게 나중에 남자가 누나 집에서 쫓겨나는 계기가 되고, 이게 또 여자와 떨어져 지내게 된 남자가 아들을 잃을 뻔한 사고를 겪고 나서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사랑이랑 감정도 결국 현실 속에서 나누는 거니까 현실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 마냥 사랑을 그려내는 로맨틱 코미디는 내겐 너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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