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재미로 읽는 책 / / 2020. 12. 29. 06:13

[To Kill a Mockingbird] 다름을 차별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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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Kill a Mockingbird>는 '앵무새 죽이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워낙 유명한 책이라 읽어보기 전에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이야기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단순한 인종차별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넓고 깊게,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인간의 복잡다단한 면모를 비교적 짧은 소설 안에 탁월하게 담아낸 작가 Nelle Harper Lee는 평생 이 책 한 권만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녀의 사촌이 왜 책을 더 이상 쓰지 않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히트한 책 다음에 또 다른 책을 쓴다면 앞에 놓인건 내리막길 뿐이라 했단다. 실제로 이 책은 흑인 인권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에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작가에게 퓰리처상을 안겼다. 그리고 현재는 미국 현대 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 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책이 사실 한국에서는 부끄러운 오역의 역사를 말해주는 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사실인즉슨, 1992년에 한겨레출판사에서 '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으로 이 책의 번역서를 출판했는데 제목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대목 여러 개가 잘못 번역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런 책이 30쇄가 넘도록 많은 이들에게 읽혔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문예출판사에서 2008년에 출간한 번역서가 있는데, 이 책은 어느 정도 괜찮게 번역했다고 들었다.

이렇게 오역 논란이 있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1960년에 출판되었지만 배경은 1930년대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이고 등장인물 가운데 흑인과 백인이 섞여 있다. 아무리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당시의 남부 백인 영어와 남부 흑인 영어를 온전히 알기는 어렵기 때문에 번역이 쉽지 않다. 나도 스터디 멤버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사전을 찾고 검색을 수없이 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우리처럼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해 허덕이는 수많은 미국 학생들이 (심지어 대학생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꾹 참고 번역서를 빌려보지 않다가 이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동네 도서관에서 이 책에 대한 논술가이드북을 빌려보았다. 다락원에서 2007년에 출간한 책인데, 챕터별로 줄거리가 요약되어 있고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 있어서 참고에 그만이었다.

이 책은 1930년대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의 Maycomb이라는 가상의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녀 Scout의 시각에서 기술한 작품이다. 소설의 줄거리와 등장 인물은 작가가 어렸을 때 고향에서 보고 겪은 일들에 기반하고 있다. 실제로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Scout의 말괄량이 성격은 어렸을 때 골목대장이라 불리었던 작가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아이의 시각에서 사건을 기술하기 때문에 어른의 시각에서는 보거나 느낄 수 없는 점들도 발견이 되고 어른의 가치판단에서 빗겨간다.

Scout이 오빠 Jem과 세상의 사람들을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 있다. 세상을 몇 해라도 더 산 오빠 Jem은 백인, 흑인, 쓰레기 백인 쯤으로 구분을 했던 것 같다. 자신이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어른들이 그렇게 구분 짓고 사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Scout은 사람, 단 하나의 그룹만 있을 뿐이라고 하고, Jem은 여동생이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해 했던 것 같다. 어린 아이들이 어렴풋이나마 세상 사람들이 서로와 서로를 구분하고 다름을 명시하고 더 나아가 우월을 가린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 이 대화를 읽는 동안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 이런 부분도 있었다. Scout이 오빠 Jem에게 말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자신의 학교 선생님인 Mrs. Gate가 유태인을 박해하는 히틀러는 비판하면서 본인이 사는 동네의 흑인들은 업신여긴다는 것이다. 인간의 위선적인 면을 목도한 아이들의 생생한 증언이었겠지. 이렇게 인간이 서로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월을 가리고, 아니 강요하고 이러한 폭력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mockingbird(흉내내기지빠귀)에 해당하는 이들이 희생되기도 하는데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였던 것 같다.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 그러면서 우월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은 그래도 나는 그렇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쉽게 생각했던 문제였다. 그러나,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그렇지 못하다고 깨달은 순간들이 있었다. 인간의 본성이 그룹을 나누고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는 것일지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주의해서 이런 늪에 쉽게 빠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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