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저자 중에 한 명이고,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있기에 구입한 책이다. 생각보다 재미있고 유익했다. 전문가들이 서울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알려주니 내가 토박이로 38년 산 곳이 이런 곳이었구나 하는 이해의 장이 새로 열렸다. 나름 알고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다.
9명의 저자들의 설명 중에 인상에 남았던 부분을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승효상>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서 1957년에 건축한지 10년만에 범죄의 소굴이 되어 결국 1972년에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킨 프루이트 아이고 주거단지의 모델이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는 점. 이 모델은 평지를 대상으로 한 것이고 우리나라는 산악지형이기 때문에 건축 과정에서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우고 물길을 돌리는 등의 자연 지형 훼손이 발생한다는 점. 또한 우리나라 신도시 건설에 이 모델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면서 지역 정체성이 사라짐. 새 도시를 건설함에 있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논의를 할 새 없이 정치가가 만들겠다고 선언하면 자본가가 와서 그의 임기 내에 만들기 때문임.
<오영욱>
이면도로에 폭이 40센티미터만 되도 좋으니까 인도를 만들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차로 침해당하지 않을 보행권을 주고 그러한 보행권이 보장될 때 사람들이 잘 걷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걸어다닐 수 있을 때 도시는 훨씬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비포선셋>에서 파리에서 가장 좁은 인도라고 하면서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길에서의 키스신이 나온다. 차 한 대도 지나가기 좁은 곳인데 사람 한 명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최소한의 영역을 주고 인도를 만들었던 도시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면도로에 인도를 만드는 건 사람들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동시에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도시가 운전자를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한>
미끄러운 금속 패널에서 감동을 받기 쉽지 않은 것은,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여러분의 거울뉴런이 그려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당의 오래된 난간이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정으로 쪼고 톱으로 썰어내는 정성스런 과정을 거울뉴런을 통해 우리가 느끼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장인의 손길'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거울뉴런을 통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권기봉>
서울에 대한 다양한 책들이 나왔지만 지금까지는 주로 건축에 집중이 되어 있다. 서울 토박이의 구술사를 집대성한 책이 나오기도 하지만 여러 작가들과 개인들이 이 작업에 동참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나마 서울은 복 받은 게 서울에 대해 책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한국에 근대가 들어왔다는 인천 제물포에 대한 책은 몇 권 없다. 부산? 그나마 몇 권 나오기는 했지만 반응이 썩 좋은 건 아니다. 목포 책? 대구 책? 사실 가야 할 길이 멀다.
<조용헌>
바위는 두뇌를 유독 혹사시키는 직업에 참 좋다. 그래서 연속극 드라마 쓰는 김수현 씨나 바둑 두는 조훈현 기사나 그런 사람들이 평창동에 사는 건 풍수지리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본다. 반면에 기업인하고 관료들은 평창동에 가서 기운이 너무 많이 들어오면 안 좋다. 관운이라는 건, 소의 코뚜레를 뚫는 거다. 관운이 좋은 사람은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끌면 끄는 대로 하는 거다. 그런데 평창동에 가서 기운이 들어가니까 '저는 말입니다...'하면서 직언하고 들이받아 버리면 관운이 없게 되는 거다.
<로버트 파우저>
골목은 랜덤성이 높아서 예측하지 못한 발견에 대한 기대가 있다. 파리나 비엔나에 가면 모든 게 예쁘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지루하다. 서울의 랜덤성을 조금 새롭게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로버트 벤투리가 얘기했던 것처럼 서울 골목의 매력은 랜덤성에서 나온다는 거다.
<이현군>
서울을 통칭해서 보면 이렇다. 한성부는 강북, 일제강점기 경성부는 영등포까지, 1946년도는 아차산까지, 1963년 이후는 관악산까지로 시간에 따라서 서울이 바뀌는 것이다. 서울에서 한양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 한양이 점점 넓어져서 서울이 된 거다. 1970년대 지도를 보면 한강 남쪽 지역은 여의도, 강남 지역으로 다 하얗다. 경부고속도로만 뚫려 있는 상황이다. 원래는 강북이 중심이었다가 점점 강남으로 확대가 되는데 이 지역을 두고 70년대 영동지구개발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나? 그 이유가 강남의 중심이 영등포니까 영동지구라는 말을 쓴 거다. 그리고 서초구가 제1지구, 강남구가 제2지구가 되는 거다.
<유재원>
우리가 한글로 된 무엇을 남길 것이냐, 어떤 글을 남길 것이고 어떤 책을 남길 것인가가 중요하다. 글이 한글로 잘 고정이 되어 있으면 언어가 잘 안 변한다. 아이슬란드나 그리스는 문헌정책이 굉장히 강한 곳이다. 그런 곳은 언어가 잘 안 바뀐다. 문자가, 글이 흔들리면 말이 흔들린다. 그러면 민족 정신이 흔들린다. 100년, 200년이 지나고 나면 이전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하나도 못 알아들으니까. 영문학에서 20세기 훌륭한 작가로 제임스 조이스,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를 들 수 있다. 세 사람 다 아일랜드 출신이다. 최고의 시인 예이츠도 아일랜드인이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소나단 스위프트도 아일랜드인이다. 결국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말로 일본 문학계를 뒤집어 놓은 꼴이다. 그리고 한국 언어는 다 잊어버린 형국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건 아닐 거다.
<고미숙>
식상, 재성, 관성, 인성 등의 과정을 내 인생의 각각의 시절마다 어떻게 조율해나갈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죠. 이게 첫 번째 그림이고 그 안에 들어가면 역마살, 도화살, 화개살, 과부살, 호랑비살 등 해서 살들이 득시글거립니다. 살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없으면 허전해져요. 원래 운명에는 이게 다 있는 것이고 삼재 이런 것도 다 있으니 운명이 공평해지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운명에 살이 있을까 걱정하다가 나중에는 왜 나는 살이 없지? 도화살도 없고, 역마살도 없어 허전해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다 내가 격어나가는 것이지, 어떤 물질의 기준, 성공의 기준을 정해놓고 가는 것이 인생의 반의 반도 즐기지 못하는 것이라는 걸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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