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캐나다에 있을 때 엄마가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원인모를 발작으로 인해 쓰러진 엄마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척추에 손상이 가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응급실에서 엄마와 함께 한 건 엄마와 같이 사는 동생이었다. 평소 세심하고 관찰력이 좋은 동생은 응급실 의사들마저도 제외했던 뇌질환 가능성을 제기했고, 검사 결과 뇌에 아무런 이상이 잡히지 않으면 검사비를 보험 혜택 없이 온전히 부담하겠다는 조건 하에 엄마가 뇌 검사까지 받게 도와드렸다. 결과는 뇌전증이었다.
60대에 접어든 엄마가 서울을 벗어나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고 하자 동생은 엄마를 양평으로 모셨다. 불안이 심해 한평생 운전대를 잡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동생은 양평에서 엄마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운전 면허도 따고 차도 샀다. 첫 운전 연수 때 운전 실력이 그닥이라는 평을 듣고는 두 번째 연수 때까지 혼자서 이리저리 차를 혼자서 몰고 다니기도 했다. 엄마를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서 본인의 불안을 누르고 택한 그녀의 운전 연습 방식이었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머나먼 곳 - 양주, 인천 등 -에 엄마가 필요하다면 모시고 다녔다.
미혼에 백수이지만 수입은 있고 가족에게 헌신적인 동생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캐나다에서 꼬박 3년을 일해서 목표였던 영주권을 따냈지만 동생이 없었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었을까. 엄마가 쓰러진 그 때 모든 캐나다 생활을 접고 돌아와야 했을지도 모른다. 엄마 집 가까이에서 자영업을 하는 아빠가 살고 있지만 이혼한 사이이므로 아빠에게 생업을 접고 간병을 해달란 부탁을 하기가 어려웠을 수 있다.
최근에는 아빠가 한밤중에 급성맹장염이 찾아와서 응급실에 갔다. 아빠와 비교적 가까이 사는 나와 남편은 밤에 핸드폰을 끄고 자느라 연락이 닿지 않았고, 동생이 연락이 닿아서 엄마를 모시고 새벽에 응급실에 갔다. 다음 날 점심 무렵 아빠가 병실에서 사용할 물품을 챙겨 병원을 찾았을 때 동생은 밤을 꼬박 새고 몹시 피곤한 상태였다. 아빠 가까이 사는 건 나였지만 응급 시에 연락이 닿은 건 동생이었다. 동생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무보수 돌봄노동자. 65세 이상 노인은 급증하는 반면 요양 시설과 돌봄 노동자의 수는 그에 미치지 못해 많은 수의 무보수 돌봄노동자가 생겨난다. 자녀, 형제, 친척 등 누구가 무보수 돌봄노동자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일하는 딸로서의 무보수 돌봄노동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미국의 상황이지만 한국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서 읽어두면 좋을 것 같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무보수 돌봄 제공자들은 교육이나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한 채로 의료적, 법적, 금융적 지식이 필요한 업무에 투입되고 따라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보험 서류, 주택 관련 행정, 지역 사회 지원 서비스 등을 조사하고 찾아다녀야 한다. (...) 또 다른 문제는 가족을 돌보는 사람이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무급으로 가족을 돌보는 사람들 중 다른 무급 제공자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람의 비율은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이고 유급 돌봄 제공자의 도움을 받았다는 비율은 32퍼센트에 불과하다. (...) 직장에 다니면서 가족을 돌보는 사람은 돌봄 책임 때문에 업무에서 심각한 문제를 겪는다. 특히 여성이 그렇다. 직업이 있는 돌봄 제공자의 70퍼센트가 업무 조정을 하게 되는데, 부담이 적은 종류로 일을 바꾸고 무급 휴직을 하고 아예 일을 그만두거나 조기 퇴직을 선택할 확률이 남성보다는 여성의 경우가 더 높다. 그렇게 생활이 바뀌면서 소득이 줄고 건강보험이나 퇴직 연금, 사회 보장 등 직장 관련 혜택에서 배제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p. 30-31)
그날 이후 돌봄 제공에 대한 내 태도가 달라진 근본적인 이유는 페그가 다른 면을 보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려는 일이 자식들에게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줄 것이고 어머니한테는 생애 마지막 시간, 가장 취약한 그 시간을 도와주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대화를 하기 전 나는 돌봄 제공이 내게서 무언가를 빼앗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p. 35)
가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결정이 유보되지 않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충분히 의견을 듣되 결정은 비민주적으로 내리는 것이다. 내가 직장 상사한테서 배운 방법이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듣고 평가, 분석하자. 이후 최선의 결정을 내리자. 그 결정이 본인들 의견과 방향이 다르더라도 이해해줄지 모른다. 설사 이해 못 한다고 해도 충분히 고려한 후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알리면 그만이다. (p. 61)
자신이 남들을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에서 행동하지는 않는지 돌이켜보라. 이는 분노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고 건강한 가족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p. 65)
죄책감을 해결하려면 자신이 전지전능하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죄책감은 자기 능력을 실제보다 크게 바라보도록 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남들이 느끼는 감정은 내 책임이 아니다. 행동 전문가들은 이를 부당한 죄의식이라 부른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 예컨대 남들의 삶에 책임감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그렇다. (p. 66)
힘겨운 인간관계를 잘 헤쳐가고 싶을 때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 할 한 단어가 있다. '해야 한다'이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기대와 가치를 내게 욱여넣었다는 뜻이다. 어머니한테 전화를 해야 하는데, 더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이 모든 일을 다 처리해야 하는데 등등. (...)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를 따라 행동하는 경우 금방 분노가 커진다. 하루가 끝날 때 중요한 딱 한 가지는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이다. 돌봄을 수행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상황, 시간 부족, 자원, 관계를 아는 사람은 오로지 당신뿐이다. 그러니 남들이 뭐라 평가하든 신경 쓸 필요 없다. (p. 70)
일하는 딸들 중 가장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은 이들은 일정 계획의 노예가 아니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분명히 알고 그에 따라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이들이었다. (p. 88)
완벽함과 그럭저럭 괜찮음 사이의 핵심적 차이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반응하는 방식이다. 어머니를 식료품점에 모시고 가고 약을 챙겨드리고 집을 청소할 사람이 당신 혼자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렸다. 당신과 똑같은 식으로 이를 해낼 사람은 없다는 건 참이다. 당신 방식이 유일하고 최선이라는 생각은 거짓이다. (p. 94-95)
기업들이 일하는 딸들을 계속 고용하며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다양한 지원책을 갖춰야 한다. 즉 적절한 비용의 다양한 노인 돌봄 서비스, 유급 돌봄 제공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체 가능한 시스템, 근무 시간에 자리를 지켜야만 인정받는 대면 문화의 극복 등이 요구된다. (p. 131-132)
용기에만 의존한다면 부모님의 감정을 무시해버릴 우려가 있다. 반면 공감에만 의존한다면 희생자나 순교자가 되어버린다. (p. 149)
나는 심리학자들이 예기 애도(anticipatory grief)라 부르는 상태였다.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예상하면서 느끼는 이 슬픔은 실제로 그 사람이 죽은 이후 느끼는 슬픔과 아주 흡사하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나는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p. 188)
부모님을 가장 잘 보살피기 위해 당신이 시스템을 파괴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이 경우 최선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신뢰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다. 강력하게 부모님 편이 되어야 한다. (p. 221-222)
상사나 동료들이 우리 마음을 읽어주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같은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과거에 같은 경험을 했다 해도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배려해달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건 그들의 역할이 아니다. (p. 232)
명심하자. 우리가 먼저 돌봄 문화와 업무 문화를 파괴하지 않는다면 결국 돌보는 내가 파괴되고 말 것이다! (p. 238)
돌봄 제공과 관련해 "늘 한 사람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형제자매 중 한 사람, 가족 중 한 사람이 결국 돌봄 제공의 거대한 책임을 혼자 진다는 것이다. 대개는 딸이다. 인생이 가장 덜 복잡한 성인 자녀, 자식이 없거나 업무 스트레스가 적은 사람이 그 역할을 맡는다고들 흔히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호스피스 병원의 간호사 페그는 돌봄 제공자들이 헌신, 두뇌, 능력이라는 세 가지를 갖추고 있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세 가지를 갖춘 사람은 대개 꽉 찬 삶을 살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돌봄을 떠맡는 '한 사람'까지 되고 만다. 어머니는 우리 가족 중에서 그게 나라는 것을 아셨다. (p. 248)
순교자 증후군(martyr syndrome)을 떨쳐내려면 "이 모든 부담을 짊어지고 뭘 얻으려는 거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한다. 남들의 공감과 인정을 바라는가? 주목받는 지위를 내려놓기 싫은가? 돌봐드리는 역할이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가? 고통 없는 즐거움은 누릴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고백해보자. '유일한 사람'이 되는 데서 만족감이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p. 251)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아이젠하워의 다음 말을 기억하자. "계획은 쓸모없지만 그럼에도 필수적임을 매번 깨닫는다." 계획은 애초에 생각한 대로 달성되기 어렵다. 생각해보자. 돌봄이 당신의 인생 계획에 들어 있었나? 계획 수립은 미래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그 가치가 있다. 계획대로 완벽하게 살아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아니, 삶의 온갖 돌발 요소들로 아예 계획 이행이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삶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유지하며 사는 방법이 무엇일지 알게 된다. 계획이 있다면 삶은 더 명확해진다. (p. 293)
연구자들은 돌봄 스트레스가 누군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데서 온다고 설명한다. 이는 돌보든 돌보지 않든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부모님이 나이 들고 아프고 결국 돌아가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스트레스의 치료제는 결국 적극적인 돌봄 역할이라고 한다. (p. 300)
"스트레스 감소에 관련된 산업은 음식, 알코올, 넷플릭스 감상, 컬러링 책 등으로 자신을 달래라고 권한다. 물론 효과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국은 도피 행동이다. 스트레스를 직시하고 돌봄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연결을 만든다. 그 연결이 스트레스 회복 탄력성의 매커니즘이다." 처음부터 돌봄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가 이것일지도 모른다. 당면한 문제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일 수 있다. 맥고니걸은 돌봄 제공이 가장 일반적인 스트레스 원인이라는 것에 동의하면서 동시에 회복탄력성의 근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양쪽을 모두 갖고 갈 능력을 키워야 한다. 부담에 시달리면서도 힘을 얻을 수 있다." 두 가지가 동시에 진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 어떻게 그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돌봄 제공자의 유익을 돌봄이 끝난 후뿐만 아니라 돌보는 과정에서도 깨달을 방법은 무엇일까? 돌봄 상황을 겪으면서 동시에 성찰을 시작한다면 가능하다. (p. 305)
자기 건강을 지키기 위해 크리샤는 더 이상 어머니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머니는 괜찮은 상태였어요. 신체적으로도 별문제 없었고요. 그래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로 작정했죠. 이제 어머니가 '날 사랑한다면 어쩌고'하는 말을 시작하면 바로 받아친답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여기 있지도 않을 거라고 말이죠." (p.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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