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재미로 읽는 책 / / 2020. 12. 29. 02:34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특권 의식 없는 아이로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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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당신으로 충분하다>에 등장하는 네 명의 피상담자 가운데 '미란'의 케이스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희생적인 부모 아래에서 자라며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고 살아온 미란. 자식 하나에 목매달고 사는 부모들이 늘어가는 현실을 보고 있자니,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는 그녀의 케이스를 가장 기억해 두고 싶다. 

 

* 나한테 떠오른 생각이나 느낌, 그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꺼내다 보면 내게 중요한 맥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심리학 관련 책을 보다가 '아, 이런 것은 내 모습일 수 있겠다, 내 모습을 설명하는 개념일 수 있겠다'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내게 적용할 때는 나의 심리적 특성을 설명하는 1천 개의 설명 중 하나 정도의 비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까지 1만 2천여 명의 사람과 상담해 온 정신과 의사로서, 사람은 어떤 정교한 심리학 이론, 어떤 정교한 정신분석학자의 섬세한 해석보다 더 정교하교 섬세하고 유니크한 존재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체험해왔기 때문이다.  

 

* 감정 표현을 잘한다는 것은 "자기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훼손,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타인이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할 수 있을 때 사람은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억압하고 쌓아두지 않고 타인에게 적절히 알릴 수 있으니 본인도 편안하고 타인에게 이해받기도 쉬울 것이다. 그의 주위 사람들도 그가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비교적 잘 알 수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의 감정을 존중하고 배려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해로 인한 불화, 본의 아니게 주고받는 상처도 적어질 것 아닌가.

 

* 사람이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것은 의외로 비판이나 비난 등 명백한 공격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깊은 감정, 상처의 경험들을 얘기했는데 상대가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더 깊은 상처를 받는다. 사람이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할 때 갖는 원형적인 욕구는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잘 스며들고 흡수되어 충분히 공감을 받았다는 느낌 그 자체이다. 고통스러운 내 감정이 타인에게 공감을 받았다는 것은, 내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내가 그런 감정을 가져도 괜찮다는 것을 확인받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사람은 깊은 위로와 함께 근원적인 안정감을 얻게 된다.  

 

* 이런 얘길 해주면 지혜가 '나 이래도 된다고 했으니까 가서 한판 하자!'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사람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사람 마음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이 충분히 이해받고 지지받으면 직접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나 충동이 오히려 줄어든다. 아무도 몰라주면 언젠가 꼭 감행할 행동도 충분한 지지와 이해를 받으면 안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이성을 잃지 않고 합리적으로 하게 된다. 충동적, 우발적인 행동은 오랫동안 내 감정이 공감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등 결핍이 있을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서적 공감과 지지는 충동적, 돌발적 행동을 포기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 미란. 친구 얘길 무조건 참고 있다가(극단적으로 '나'가 없다) 마지막에 폭발하는 것('나'없이 계속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은 없으므로, 임계점을 넘으면 극단적으로 '나'만 있는 상태로 폭발한다)은 대화가 아니다. 어느 상황에도 '나와 너'의 존재가 함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 두 가지 상황은 모두 자폐적이다. 너만 있거나 나만 있다. 상대와 내가 함께 존재하는 순간이 없다. 극단적으로 숨을 참고 있다가 더 이상 참기 어려울 때 갑자기 내뿜는 호흡처럼 편안한 숨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란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나'만 있고 '너(부모)'가 보이질 않는다. 친구와의 관계는 다르다. 미란의 관계는 극단을 오간다. 얼음물과 끓는 물만 있다. 따뜻하거나 시원한 영역이 없다. 어느 관계에서도 기분 좋게 몸을 담그거나 편안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미란은 자신의 이런 극단적인 특성의 한 축을 '자신감, 당당함'으로 잘못 알고 있다.

 

* 내게 사람들의 가장 근원적인 고통을 하나만 꼽아보라면 그건 '사랑과 보살핌의 결핍'이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다시 확인한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까닭 모를 불안과 두려움, 낮은 자존감의 밑바닥에는 대부분 '사랑과 보살핌의 결핍'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인간 상처의 근원이기도 하다.

 

* 어린 시절의 학대처럼 극단적인 경우만 여기에 해당되는 건 아니다. 엄마 아빠가 심각한 갈등이 있을 때 태어나고 자랐다면, 아빠가 해고를 당해 어려울 때 태어나고 자랐다면, 엄마가 고부간의 갈등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나 엄마의 일이 극심한 감정 노동인데도 주위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아이를 키워야 했다면, 부모가 심리적으로 미성숙한 어른이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가 경험하는 '사랑과 보살핌의 결핍'은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 사람 사는 세상의 불완전성을 고려한다면 직간접적으로 이런 환경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은 인간은 없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부모의 일상적 조건 속에서도 아이에게 치명적인 결핍은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가 이런 결핍의 징후를 보일 때 부모 입장에서 그것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한테 뭘 어떻게 했다고 이러느냐'하며 답답하고 억울해할 수 있다.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자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부모는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왜 못나게 이럴까, 내가 문제야'하고 스스로를 탓한다.  

 

미란이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기보다 '특별 대우'에 가까운 것은 아니었을까. 희생적인 부모로부터 받은 일방적이고 특별한 관심과 대우.

 

* 희생적인 부모는 아이와의 관계에서 '아이'만 존재하고 '부모 자신'의 존재성은 희미하다. 아이의 욕구, 감정, 선호는 빠르게 감지하고 인정하지만 부모 자신의 욕구나 감정 등은 아예 없는 것처럼 여긴다. 그런 관계에서 자란 아이는 '아이'도 '부모'도 인정되는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성 속에서 자란 아이와는 다르다. 사람 관계 맺기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된다. 사람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 '극단적인 우월감' 아니면 '극단적인 두려움'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그 아이 내면에서 '타인'이란 매우 하찮거나, 매우 두려운 존재 둘 중 하나다. '나'만 존재하는 듯이 살다가 '타인'의 존재를 대면할 수밖에 없을 때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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